다정이란 이름으로
다정이란 이름으로
매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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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 때가 가장 좋았다. 지금도 여전히 종인은 꿈을 꿨다. 그와, 자신과, 백현이 있는 꿈을. 꿈은 이상할 정도로 늘 그가 혼자 자신을 찾아오거나, 세 사람이 함께이거나였다. 그가 혼자서 저를 찾아오는 꿈을 꿀 때면 늘 등을 보이고 멀어지는 그를 붙잡으려다 울며 깨는 것이 다반사였다. 셋이 함께 있을 때면 그 때의 그 연노란색 캠퍼스였다. 그가 가만히 팔짱을 낀 채 웃고 있고, 백현은 익살스런 표정이었다. 종인은 가운데 아빠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래서 종인은 늘 잠이 들기 전, 그와 자신과 백현이 있는 꿈을 꾸길 빌었다.
‘도훈이가, 죽었대.’
백현의 목소리가 잔뜩 잠겨있었다. 눈가가 퀭하고 얼굴이 버석했다. 우습게도 도훈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고 전한 것은 제가 아니라 백현 쪽이었다. 만일 반대로 제가 먼저 알아서 백현에게 전해야만 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백현은 어떤 표정을 했을까. 종인은 지금도 가끔 그 반대를 상상했다.
‘회사 앞 사거리에서... 교통사고였대.’
그대로 안에서 뭔가가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 종인은 악을 지르며 매달렸다. ‘어떻게 그렇게 덤덤하게 전할 수가 있어? 어떻게 그래!’ 울며불며 소리를 질렀다. 백현은 제가 무게를 싣는 대로, 밀치는 대로 그대로 밀려났다. 그 때의 제가 포악했다고, 종인은 인정한다. 백현의 잘못이 아니란 것도 알았다. 알면서 그랬다. 그만큼 그가 아니고서는 그 감정을 나눠줄 이도, 받아줄 만큼 좋은 이도 없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거였다.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죽었다고 말할 수 있어!’ 살려내라고도 말했던 것 같다.그러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백현은 무너지는 저를 잡지도 못한 채 그저 속수무책으로 받아내기만 했다. ‘왜 형은, 울지 않는 거야?’ 나만큼 슬프지 않지, 라는 듯이 몰아세운 셈이었고 그 감정에 빠져 한동안 허우적거렸다. 여전히 사과는 하지 못했다. 아직은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처음은 늘 셋이 함께였다. 관계의 출발선은 엇비슷했다. 종인이 갓 대학 신입생이었던 4월, 쭈뼛대며 기웃거리던 사진부의 동아리방 앞에서 만났다. 소위말해 그렇게 ‘핫한’ 써클은 아니었다. 언제든 마니아는 있을 법 했지만 신입생에게 인기를 얻기에는 지나치게 정적인 취미였다. 몇 명의 핵심 멤버 위주로 돌아가는 동아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종인은 금세 적응하고 녹아들었고, 도훈과 백현은 그 중 큰 부분이었다. 둘은 고등학교 때부터의 절친한 친구였고, 본가가 같은 동네에 있었다. 그 두 단짝친구의 조합에 종인이 자연스럽게 끼어 어느 샌가 셋이 됐다. 늘상 붙어다녔다. 모든 걸 함께 했다. 종인은 제 과의 친구들보다도 둘과 붙어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몇 살 터울이 나는 선배들과 다니니 빠르게 애늙은이가 되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과 생활에 소홀해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 테두리가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렇게 대학교 1학년의 여름을 보내고 가을과 겨울이 차례로 지났다.
변화가 일어난 건 백현이 사진부 활동에 소홀해지면서였다. 백현은 사진을 꽤 좋아했고, 제법 감각이 있었지만 원래 그의 전공은 음악 쪽이었고 졸업이 가까워지며 제 전공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졸업을 준비하는 건 도훈이형도 마찬가진데. 처음엔 서운해 입이 나왔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빠져나가버린 자리에 뻥 뚫린 듯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함께하면 재밌었는데. 의리 없게. 가끔 얼굴을 볼 때면 드러내놓고 툴툴 대도 백현은 웃기나 했다. 그제껏 한 번도 서로 싸운 적이 없었다. 도훈과 백현이야 이미 친하다 못해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놀랄 정도로 종인에게도 마치 울타리처럼 아늑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늘 셋이 함께 하던 장면에 언젠가부터 한 번, 두 번 백현이 빠지게 되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소식에 전보다 느려졌고, 시시콜콜한 것까지는 모르게 되었다. 그 즈음 도훈과 첫 키스를 했다. 잘 쓰이지 않아 자신들과 백현의 아지트로 삼았던 사진부 맞은 편 강의실에서였다.
1
햇수로 세어보니 무려 7년을 만났다. 함께 보낸 계절들을, 한 두어 번쯤 더 보내면 잊어질까. 멍하니 티비를 보다가도, 버스 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있다가도 눈물이 났었던 걸 생각하면 벌써 1년 정도를 보낸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그러고 보면 꿈에 나오는 횟수도 처음보다는 훨씬 줄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꿈에 나왔었다. 늘 베개가 축축한 채로 잠에서 깼다. 산 사람은 살아지게 된다는 게 이런 거라면 참으로 허탈했다.
“밥 먹었어?”
“아니.”
백현은 이미 앞치마를 두르며 묻는다.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할 걸 아니까. 백현은 일주일에 서너번 쯤 이집으로 퇴근을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같이 살지 않는다. 그가 이 집에서 잠을 자지도. 도훈이 죽은 후로, 생활이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집은 여전히 그와 함께 살던 그대로다. 이사를 가려했지만, 이사를 가야만 하는 이유만큼이나 갈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아서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아 더 엉망이었다. 거의 대부분을 그 공간에서 보내면서 일상을 놓아버렸다. 비밀번호를 훤히 아는 백현은 제 알아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것저것 발로 밀며 들어오고, 주로 하는 질문은 밥 먹었느냐는 물음이었다. 백현도 원래부터 요리 솜씨가 썩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근래 1년간 반복하다보니 요새는 실력이 느는 게 제법 눈에 띄었다. 아마도 백현이 있기 때문에 제가 더 엉망인 채로 놓아두고 있는 게 아닐까 문제점을 인식했지만, 달리 새로운 변곡점을 둘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아서 내버려두게 되었다. 거기서부터 정말 크게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먹자.”
“오늘 뭔데?”
“김치볶음밥.”
자리에 털레털레 가 앉자 숟가락을 쥐어준다. 백현은 입이 짧은 편이다. 앞치마를 두른 채로 그대로 맞은편에 앉아 종인이 먹는 동안 있다. 안부는 보통 백현이 먼저 묻지만, 대화의 물꼬는 보통 종인이 텄다.
“오늘은 회사 일찍 끝났어?”
“응.”
“형네 회사 그, 걸 그룹 컴백한다며. 그, 누구지. 핑크...”
“핑크부케.”
“아 맞다. 신곡 나오구 그러면 바쁜 거 아냐? 인기 많은 애들이잖아.”
“어, 내일 타이틀 녹음할 거야. 애들이 새벽밖에 시간이 안 돼서 못 와. 먼저 자.”
“응.”
김치볶음밥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밀어 넣으며 종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이제는 꽤 익숙하지만 백현이 이 집에 앉아있는 건 처음엔 상당히 어색한 풍경이었다. 이렇게 당연하게 기다리지 말고 자라고 말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도훈이 죽기 전 백현이 이 집에 왔던 횟수는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백현과 예전보다 어울리는 시간이 줄었다곤 하지만 달리 싸운 것도 아니었고, 여전히 다른 사람들보다는 가까운 사이였다. 당연하게도. 도훈과 백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이었고 꾸준히 연락은 되고 있었다. 백현과 도훈이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주기적으로 생존신고 정도는 하는 사이였고, 학교를 다닐 때만큼은 아니지만 종종 셋이서 모였다. 백현과 도훈은 따로 얼굴을 보기도 하는 것 같았다. 종인과는 둘이서만 따로 만나진 않았다. 처음에는 말이 오갔지만 몇 번 이래저래 약속이 흐지부지 되다보니 다시 말붙이기가 애매해졌다. 친분을 생각하면 좀 뜸해졌다고 사이가 뜨고 그것 밖에 안 되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보니 백현의 근황은 주로 도훈을 통해 듣게 됐다. 서운했지만 종인 쪽에서 먼저 밀어붙일 정도는 아니었고, 백현도 노력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사이. 어느 새 도훈이 없이는 연결고리가 없으면서, 같이 모이면 아무렇지 않은 체 옛날의 사이인 척 유쾌하게 지냈다. 그 정도였다. 도훈이 죽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계속 그 정도에 머물러 있었을 거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좋았던 추억만을 미련하게 붙잡아 가까운 사이인양.
백현이 이렇게나 출근도장을 찍게 된 건, 도훈의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뒤에 종인이 짧게 병원 신세를 졌던 게 결정적이었다. 병명이야 뻔했다. 과로와 쇼크, 위경련. 그런 정신성의. 그 후로 백현이 저를 이렇게 살뜰히 챙겼다. 어떨 때 보면 바보 같을 정도로 헌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끔은 누구에겐지 모를 화가 난다.
‘어머니. 저 있잖아요. 백현이 있잖아요.’
그 때, 백현은 망연자실한 가족들을 대신해서 상주 노릇을 했다. 일일이 손님을 받으며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또 제일 앞에서 상여를 멘 남자였다. 종인은 그 때, 백현이 참 신기한 사람이다 싶었다. 저는 이렇게 온몸에 힘이 빠지고, 무기력한데 어떻게 밥도 먹지 않고 저렇게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일까. 꼭 기계처럼. 하관을 마치고 백현은 그의 어머니를 장지에서부터 집까지 모셔다드린다고 자처했다. 꽉 막힌 차안에서 어머니는 내내 울었다. 종인은 일전에 그의 어머니와 일면식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다만 굉장히 가깝게 지내던 후배라는 백현의 소개에,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우는 걸 보고 그녀가 연민과 동질감이 어린 손길로 한 번 머리를 쓰다듬었던 게 다다. 어머니를 내려드리고 돌아가던 길. 그제야 울음이 터진 저를 보고 백현은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백현은 위로가 서툰 남자였다. 종인아, 하고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로 부르다 올라오는 내내 흐느끼는 소리를 가만 듣고 있던 게 다였다.
몇 달? 아니 근 2년 만에 처음 발을 들인 집에 그렇게 탈력한 종인을 데려다 눕혔다. 백현은 정말로 둘이 동거하기 시작한 이후 이상할 정도로 이 집에 잘 오지 않았다. 그는 종인을 침대에 내려놓고 황량해진 집을 한 번 휘 둘러봤다. 잘 수 있겠어? 여기 스탠드 켜놓고 갈게. 전화하고. 돌아서는 손목을 잡았다. 목소리가 쉬어 나왔다.
‘소주 한 잔 하고 가. 이 집에 혼자 못 있겠어.’
냉장고를 들여다본 백현은 그 길로 나가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왔다. 빈 벽에 등을 대고 나란히 앉아 소주를 따랐다. 잔에 반쯤 따라주는 백현의 손에서 병을 빼앗으려다 그만 잔을 넘어뜨렸고 별 것도 아닌 것에 눈물이 다시 터져 그를 곤란하게 했다. 잘 위로할 줄도 모르는 사람인 걸 알면서 뭐가 그렇게 편하고 만만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짓게 했는지. 한참을 입만 벙긋대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어깨에 기댔고 그의 셔츠 어깨가 흠뻑 젖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 옷을 벗겼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침대로 올라가지도 않은 채 바닥에서 몸을 겹쳐 등허리가 배겼다. 한참을 무기력하게 아래에 누워 그의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올려다보다 올라갈래? 하는 물음에 그의 위로 올라가 앉았던 기억이 단편적으로 남아있다. 들썩이는 엉덩이와 허벅지를 연신 달래며 쓰다듬던 손의 느낌. 그 날은 비가 왔고 무척 습했다.
2
‘잊어버려. 나는 그럴 거니까 형도 잊어버려줘.’
그렇게 말했을 때 백현의 얼굴은.
실수였다. 혼란스러웠고 판단력이 흐릿했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리다는 기준조차 스스로 세우기 힘들었다. 그가 다른 기대를 갖고 있을까봐 두려웠다. 그 때 차마 부르지 못하고 입안에 맴돌던 이름을 백현도 모르진 않을 거였다. 늘 센스가 좋은 남자였고, 이번에도 다르진 않았을 거다. 정말로, 아무것도 줄 자신이 없었다.
‘난 실수 아닌데.’
한참을 있다가 백현이 한 말은 그거였다. 이런 말, 이런 타이밍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니, 어쩌면 영원히 할 생각도 없었는데,
‘김도훈이 먼저 나한테 얘기하더라. 너 좋아한다고.’
‘.......’
도훈이, ‘먼저.’ 그 뒤에 삼켜진 무수한 이야기에 종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알기가 무서웠다.
‘그 때 강의실에서 둘이 키스하는 거, 봤어.’
백현은 못 본 척 했고, 나가서 그 이후로 다시는 아지트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 번도 다시 우리의 공간에 혼자서도 발을 들인 적 없다. 우리 사귀기로 했어. 중대발표라도 하듯 백현을 앉혀놓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했던 그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데 편견이 없다고 말해주었던가. 어차피 김도훈은 김도훈이고, 너도 너고. 정말 아무 것도 걸릴 없는 사람처럼 웃으며 달라질 것 없다고 말해주었던가. 그래서 고마웠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점점 멀어지는 걸 잡을 수는 없었고. 그 모든 게 밀려들어왔다. 도대체 어떤 게 ‘먼저’라는 이야기고, 뭐가 어느 시점인 건지 시점이 뒤엉키기 시작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버거웠고, 이런 타이밍에, 아니 어쩌면 영원히 하기 적절하지 않았을 얘기라면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눈을 질끈 감고 잘라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위로해준 건 고마워. 근데, 몸으로 위로 받는 거. 정말 저질이잖아.’
그 잔인한 거절에. 종인은 그 때 처음으로 백현의 눈물을 봤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는 너무 바빴고 오히려 메말라있었다. 기계적으로 모든 복잡하고 무거운 일을 뚝딱 해냈다. 마음 놓고 울기엔 그의 어깨에 짐이 너무 많았다. 일부러 불을 켜지 않은 집. 그 어둠 속에서, 눈물로 흠뻑 젖은 핼쑥해진 뺨을 모른 척 했다. 종인으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지금도 아직 그 때 백현이 얼마나 얼룩진 눈을 했었는지 잊지 못한다. 자신도 위로받아야할 존재였다고. 그 말이 하고 싶었을까.
상처 준다는 걸 알면서도 상처를 줘야만 하는 때가 있다.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고도 타인과 자신에게 무수한 상처를 남기며 살지만, 알고도 상처를 주기로 했을 때는 더욱 참담하다. 우린 안 돼.
3
백현은 이미 꺼낸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약간의 어색한 공백 후에 다시 종인의 앞에 나타난 백현은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 저를 보고 딴청을 부리듯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어차피 회수해갈 수 없잖아. 사실이고.’ 그 공백이 그리 길지도 않았다. 그 이후로, 백현과 종인 중 누구도 그 날 밤의 일을 직접적으로 입에 담진 않는다. 암묵적인 약속, 아니 불문율 같은 것이다.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앞에 붙어 숨 막히게 관계를 짓눌렀다. 백현은 숨길 생각이 없고, 종인은 그게 부담스럽다. 많은 말하지 못할 것들이 있지만 백현은 여전히, 그 언젠가부터. 자신을 좋아한다.
그 시점이 다 그 즈음이었다. 백현과 그런 일이 있고서, 여러 가지가 몰려든 탓인지 그만 탈이 났고, 기어이 병원 신세를 졌던 게. 백현은 일부러 찾지 않았다. 고집이기도 했고, 자존심이기도, 한편으로 양심이기도 했다. 염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엔 어떻게 알고 나타난 백현은 잔뜩 입맛이 쓴 표정이었다. ‘형 나 아파.’ 그 한마디면 하던 것도 내팽개치고 달려올 만큼 자존심도 없는 놈인 걸 알면서. 그 정도 아량도 못 베풀어주느냐고. 그가 말했다.
‘너 누워있는 동안 생각했어. 이번엔 미루지 않는다고.’
그렇게 그 전날 받은 상처를 잊어버린 것처럼. 정말 그 답지도 않게, 모르는 척 연기하는 얼굴을 입고서. 그렇게 벌써 1년이다.
종인은 오랜만에 판교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다. 종인이 다니는 회사는 IT쪽이다. 종인은 그래픽 쪽을 맡고 있다. 연구개발이 많고 프로젝트 형태가 많은 회사는 업무 성격상 재택근무를 많이 허용했다. 잠이 많고 부지런 떨지를 못 하는 데다, 혼자 집중해서 일에 깊게 몰입하는 게 훨씬 능률적인 종인에겐 최고였다. 하루 종일 퍼져있고 싶은 날이 많은 근 1, 2년은 더 그랬고. 오래간만에 얼굴을 본 사장님과 몇몇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동료들도 반가웠고, 간만의 마실에 기분이 좋다. 사무실에서 나오는 길, 살살 불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이 얼굴을 두드린다. 돌아오면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백현의 회사에 들렀다. 약속은 따로 하지 않았고, 백현의 일은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편이지만 보통의 퇴근시간에 가까워져 그랬다. 그랬더니 역시나 한참 일하는 중이다. 종인은 굳이 방해하지 않고 문턱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백현의 일을 지켜봤다.
“다시.”
백현은 아까부터 계속 저 상태다. 벌써 한 20분 째. 듣는 사람 가슴이 옴죽 붙을 냉랭한 목소리로 다시. 다시. 다시의 연속. 종인만 해도 벌써 한 열 번은 들은 것 같다. 녹음실 안에 있는 얼굴이 앳된 여자애는 잔뜩 울상이다. 금방이라도 한 번만 톡 건드리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다. 귀여운 얼굴인데, 아이돌인가. 웬만하면 방해하지 않고 기다리려 했는데, 백현의 미간에 세로줄이 선명하고 인상이 나빠 보일 정도로 인상을 쓰고 있는 게, 저가 온 줄 정말 까맣게 모르는 것 같아 인기척을 냈다. 좀 멈춰줘야 할 것 같기도 했고. 불쌍한 어린양을 위해서.
“형.”
갑자기 부르자 잠깐 어깨가 움찔한다. 백현이 휙 돌아본다.
“...어? 언제 왔어?”
“좀 전에. 마저 일 해. 나 좀 기다리면 되니까.”
한 발짝 작업실 안으로 더 들어오며 말을 하니 찝찝한 얼굴로 녹음실 안쪽을 돌아다본다. 안에 있는 쪽은 잔뜩 얼어있고. 잠시 생각하던 백현이 영 떨떠름하게 한숨을 한 번 폭 쉬고 말한다. 일할 때의 백현은 상대적으로 좀 예민하다.
“아니다. 그 김에 잠깐 쉬지 뭐.”
“그러던가. 좀 쉬게 해. 그렇게 몰아붙이면 될 것두 안 되겠다.”
그 말에는 백현도 대충 수긍하는 듯 했다. 녹음실 너머로 말을 전하며 마이크를 끈다.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와. 정신 못 차리지, 아주.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단 듯 포르르 뛰어나가는 여자애. 녹음실에서 뛰쳐나오는 얼굴을 보니까 생각보다 더 어리구만. 진짜 화장실 가서 우는 거 아닐까. 좀 안쓰럽기도 하고. 종인은 그 뒷모습을 좀 시선으로 좇다가 다시 백현을 돌아봤다. 앉아. 금방 먼저 갈래? 좀 걸릴 것 같은데. 기다릴 수 있겠어? 빤히 훑어보자 백현이 의아한 듯 묻는다.
“왜 그렇게 봐?”
“그냥. 형이 참 낯설다 싶어서.”
“응? 뭐가.”
“아니 그냥, 나는 맨날 웃는 것만 보니까.”
“뭐야 너... 나한테 미안하냐?”
이런 때, 특유의 재치나 장난기로 편하게 대해주는 것은 늘 백현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백현이 끌어다준 의자에 순순히 앉아있자 손을 뻗은 백현이 뺨을 꼬집었다.
“아!”
이 인간이. 방금 종인은 진심으로 좀 발끈했다.
“진짜 아픈데???”
“아프라고 꼬집은 거 맞는데? 내가 너 좋아한다고 꼭 안 아프게 해줘야 된다는 법 있냐.”
또 좋아한다는 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뚱한 표정을 짓자 익살스럽게 웃는다. 못 당하겠다. 종인도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그냥 말았다. 어색해하는 걸 금세 알고 백현이 덤덤한 투로 덧붙인다. 그는 다시 사운드 키를 조절하고 있다.
“조급하게 안 해. 조금 더 기다릴 테니까.”
“.......”
명분이 어찌됐든 이렇게나 자주 부대끼는데, 완전히 아무 일도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와 키스를 할 뻔한 적 있다. 결과적으로는 하지 않았다. 밖으로 좀 나가자는 백현의 손에 끌려 나가 전시를 관람하고, 식당에서 밥도 먹고, 그가 사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공원도 걸었던 날. 제가 평소보다 말을 많이 했었나 보았다. 동그랗고 노란 가로등 아래서.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그 벤치 옆에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이 멈춰 섰을 때.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고개가 이쪽으로 기울었고, 종인은 손에 쥔 아이스크림콘을 꽉 쥐었다. 숨이 파르르 떨렸다. 그 몇 초가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결국엔 고개를 돌려 피했다.
‘미안. 근데 못하겠어.’
‘...그래.’
백현은 선선히 물러났지만, 그대로 시간을 같이 더 보낸다는 건 서로에게 고역이었다. 그렇게 물러선 그는 그 길로 종인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후론 다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치부했다.
아직 도훈을 다 잊지도 못했고, 죄책감이 목구멍까지 짓눌렀다. 아직 그를 잊게 할 만큼 충분한 계절이 지나지도 않았다. 세상에 이미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못 볼 거라고 취급해버리는 못돼먹은 짓을 하고 싶지도 않다. 과연 그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도 백현과. 항상 답은 똑같았다. 정말, 가장 말도 안 되는 일이다.
4
“보지 마.”
이른 저녁인데 불을 켜지 않아 어둑한 집에 성큼성큼 발을 들인 백현이 리모콘을 빼앗았다. 영상이 돌아가던 텔레비전 화면을 그대로 꺼버린다. 종인의 얼굴에 일렁거리던 브라운관의 푸른빛이 꺼졌다. 어두운 가운데도 알 수 있다. 홱 돌아보는 종인의 눈이 반항적이다.
“왜 뺏는데? 이리 줘.”
“이제 그만 해.”
“뭘 그만해.”
“.......”
내일은 도훈의 기일이다. 두 번째 맞는. 시간이 약이라고, 최근의 종인은 컨디션이 꽤 괜찮은 편이었지만 피해갈 수 없는 날도 있다. 며칠 전부터 기분이 들쑥날쑥했다. 지난 연말쯤 꺼내 보았다 혼절할 만큼 울고 어딘가 구석에 밀어놓았던 영상을 다시 꺼냈다. 도훈과 자신이 담긴, 도훈의 웃는 얼굴이 많이 담긴 비디오. 이런 때의 종인은 자신 스스로도 조절할 수가 없다.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더 이상한 거라고. 종인은 그렇게 스스로를 방어한다.
“이제 그만하라니.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만 둘 수 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아, 빨리. 내놔.”
“...뭐 좋을 게 있다고.”
“좋은 거 없는 거 나도 알아. 근데 그게 맘대로 되냐구. 형은, 생각도 안 나냐? 그렇게... 친했으면서.”
“나도 생각 나. 안 하려고 노력하는 거지. 너만 걜 잃은 게 아냐. 나도 친구를 잃었어. 그냥 버티는 거야.”
종인은 백현을 한참 노려봤다. 뭐가 맞는 말인지, 그런 거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지금은 듣고 싶지도 않고. 백현도 덤덤한 얼굴로 눈을 피하지도 않는다. 오기가 차올라 저도 모르게 입이 내뱉었다.
“.......”
“애인이랑 친구는 달라.”
그런 얼굴 할 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해버렸다. 종인은 말을 잃은 백현의 손에서 리모콘을 빼앗았다.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질린다는 얼굴 할 줄 알았는데. 막상 마주하니 목구멍이 콱 좁아든다.
“보고 싶은데... 그럼 나보고 어떡하라고.”
빨개진 눈가를, 보고도 달래주지 않는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백현이 나가버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 좀 미적대다가 어떻게라도 가겠지 싶어서 무작정 1층으로 나왔는데, 여전히 백현의 차가 주차장에 서있다. 좀 쭈뼛대다 가까이 다가가서 운전석을 들여다보니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있었다. 똑똑. 조심스럽게 창문을 두드렸다. 형. 작게 부르자 눈을 뜬다. 대답 없이 잠금을 푸는 소리에 눈치껏 돌아가서 조수석에 탔다. 그가 시동을 켜고 천천히 차를 출발시켜 단지를 벗어날 때까지도 입이 안 떨어졌다. 종인은 손가락을 만지작대다 그의 옆얼굴을 힐끗 보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안 갔어? 형 화나서 간 줄 알았는데....”
“오늘 강릉 간다며. 나 가면 어떻게 하게. 운전도 못 하면서.”
“그건 그렇지....”
백현은 말없이 차를 몰았다. 좀 자던가. 10시는 돼야 도착할 거야. 조금 뒤에 심심한 투로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잠이 올 것 같진 않다. 도훈을 보러갈 때 별로 엄청 유쾌한 분위기로 간 적이야 없었지만 이렇게 조용히 간 적이 있었나. 도훈의 원래 집은 강원도다. 그의 가족들은 매장을 하는 주의였기 때문에 고향에 있는 가족의 묘 자리에 그를 묻었다. 당연히 백현이나 종인은 그에 대한 권리가 없었고. 딱히 현대식은 아니었다. 둘이 따로 도훈의 사진 몇 장과 조그만 물건 몇 개를 담은 작은 병을 동해바다에 띄웠다. 강릉에. 도훈은 늘 가기에 멀더라도 서해보다 동해가 좋다고 했으니. 되는 일이고 안 되는 일이고, 환경보호고 뭐 그런 건 그 때 종인의 안중에 없었다. 지금은 어디로 흘러가서 가라앉았는지, 부서지고 썩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겠는 바다 위로 둥둥 떠가는 유리병을 보며 종인은 한참 목 놓아 울었다. 행여나 안 좋은 생각을 할까 종인의 팔만 잡은 백현은 어정쩡한 폼으로 내내 그 옆에 서있었다. 그 울음을 들으면서, 저를 잡지 않은 백현의 손이 몇 번이고 담배갑이 든 주머니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걸 종인은 미처 몰랐다.
지금 다시 그 바다를 마주보고 앉아있다. 그 자리에서, 그 때보다 조금은 덜 거센 파도가 철썩철썩 사람도 없는 조용한 바닷가에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광경을 바라봤다. 무릎을 끌어안고 파도치는 걸 구경하던 종인은 운동화를 신은 발을 움직여 모래를 살살 밀어냈다. 그러다 고민 끝에 살짝 고개를 틀어 옆에 앉은 백현을 돌아 봤다.
“고마워. 그 때... 다 해주고.”
언젠가 한 번은 얘기 하고 싶긴 했었다. 너무 늦었나. 종인의 생각보단 그래도 조금 빠른 것 같기도 하고. 그 때,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하고 꿋꿋하게. 누구보다 듬직하게 그를 보내줬던 백현.
“너 좋으라고 한 거 아닌데.”
백현은 저를 쳐다보지 않는다. 여전히 끝이 없는 바다 저 끝을 보고 있다. 종인은 여전히 제가 자라지 못하고 무릎 사이에 턱을 괴고 어린애 같은 자세나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 때문에 한 거야.”
“.......”
“우리 엄마는 일하잖아. 그래서 어머니가 나 밥도 챙겨주시고. 그랬어. 내 책상보다 도훈이 책상에서 공부한 적이 더 많아.”
백현이 아까부터 담배갑만 만지작대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모르지 않는다.
“그래. 니 말대로, 분명 연인이랑 친구는 다른 거겠지만. 내가 그 녀석이랑 함께 한 시간의 밀도가 낮진 않다고.”
“...알아. 미안.”
작게 웅얼거린 사과에 슬쩍 이쪽을 돌아보는 백현의 얼굴에 음영이 졌다. 희미하게 웃었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는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펴도 돼, 담배. 하고 덧붙였을 때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 그제야 종인은 안도한다. 그렇게 백현 쪽에서 먼저 외로운 얼굴을 해버리면, 정말 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 같아서.
이불이 부스럭거린다. 종인은 한참을 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렸다. 뼈가 시릴 정도로 외로웠다. 이런 밤이면 가슴 한 가운데가 막힌 것처럼 먹먹해서 잠들 수가 없다. 등 뒤에서 백현이 작게 한숨을 쉰다. 이렇게 스케줄상 하룻밤 자고 올라갈 수밖에 없는 날이면 백현은 트윈 베드룸을 예약해 놨다. 그게 아니더라도 더블베드의 끄트머리에 비스듬히 상체를 세우고 누워 나머지 공간을 종인이 쓰도록 내버려뒀다. 백현은 이런 날 잘 잠에 들지 않는다.
“이리 와.”
“.......”
가까이 오라는 말에 종인은 조금 망설였다. 당장이라도 옆으로 가고 싶지만, 염치없고, 두려웠다. 그래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백현에게 등을 돌리고 따로 누워, 혼자 울음을 꾹꾹 삼켜야만 하는 밤은. 그가 옆에 없는 것보다도 더 외로워서.
약간의 고민 끝에 냉큼 베개도 없이 좁은 싱글 침대를 파고들면 이불을 들어 틈을 내준다. 쑥 이불 안으로 들어가자 백현의 손이 목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 어깨를 둥글게 감싸 안는다. 종인이 작은 몸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팔베개를 한 팔과 품에 폭 와서 안긴다. 몸을 웅크리고 들어온 종인의 동그란 머리통 위로 턱을 얹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좀 멀리하고 싶은데, 이렇게 안 도와주냐.”
“.......”
“도 닦는 심정인 거 알면서.”
종인이 가슴팍에 뺨을 대고 안기면 이렇게 높이가 딱 알맞았다. 어차피 종인은 조금 뒤에 울음이 멎으면 스륵 잠이 들 테고, 백현은 이대로 밤을 꼴딱 지새워야할 테다. 이렇게 안성맞춤인데, 처음부터 연인이면 안 됐었나. 우리는. 빛 그림자가 어릿한 천장을 보며, 그런 나쁜 생각을 한다. 그렇게 말하면, 네가 나를 경멸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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